좀머 씨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을 줄 알고 책장을 넘겼다.
무슨 반전이나 사연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에게서 들을 수 있었던 건 '제발 날 좀
내버려 두시오.'란 단말마뿐.
그가 왜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온 곳을 헤집고 다니고, 무언가에 쫓기듯 걷고 돌아다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냥 모든 게 추측과 억측일 뿐.
그러곤 저러다가 죽겠다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그의 존재와 상황에 무감해지는 상황이 되었다.
유일한 목격자인 주인공인 소년은 호수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는 좀머 씨를 향해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고
멍하니 바라볼 뿐.
아지랑이 바라보듯, 신기루 바라보듯.
그 장면에서 안타까웠다.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던져 봐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 후 그의 존재에 대해 무관심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발에 걸려 채이는 길가의 돌멩이처럼 그의 존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갔다.
일곱 살 아이는 아버지와 경마장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장대비 속을 걷고 있는 좀머 씨에게 아버지는 그러다 죽겠으니 차에 타라고 한다. 하지만 좀머 씨는 '그러니 제발 나를 좀 내버려 두시오.'란 말을 내뱉으며 가던 길을 재촉해 가버렸다. 이 때 소년은 아마 깨달았으려나. 자신과 다른 상황,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사는 사람도 세상에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나름의 삶도 존중해 줘야 한다고.
좀머씨 이야기는 한 소년의 성장기를 추억하는, 한 편의 동화를 보는 듯한 아름다운 성장소설이다.
주인공의 성장을 통해 본 세상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참고 견딜 만한 성장통과 정겨운 추억이 버무려져 있다. 아이가 회상하는 과거는 한 편의 수채화를 보는 듯 정겹다.
하지만 주인공 아이와는 사뭇 다른, 존재감이란 전혀 없는 좀머씨는 다른 이들과는 동떨어진 삶의 궤도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 좀머 씨에겐 이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왔었을까?
반전을 기다린 내가 너무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진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상황은 쉽게 바꿔지지 않아.
지병이라도 있고, 헤쳐나갈 묘수나 힘, 누군가로부터의 도움이 없다면.
아니면 그냥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이,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몰라.
좀머 씨의 배낭, 지팡이, 넝마 같은 무거운 옷, 고무장화, 빨간 털모자로 그의 마음과 상황을 헤아려 볼 뿐이다.
작가는 특이하게도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길 꺼려했다고 한다. 어쩌면 작가 자신을 좀머 씨에게 투영시켰을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만, 어떤 이는 굳이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숨고 싶을 수도. 그러니 세상이여 필요 이상의 관심은 그만 접어두어라. 세상엔 이해 못 할 게 천지란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님 세상에는 이해도 할 수 없는 영역의 그늘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소년은 피아노 학원에 늦게 온 자신을 꾸짖는 모욕적인 상황에 자살을 결심하는 장면이 있다. 세상엔 힘들다고 소리치는 순간에도 그보다 더 큰 고통으로 신음하는 존재들이 많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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