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이곳은 책, 특히 소설을 좋아하는 주인장 영주에 의해 탄생된 공간인 서점을 소개하는 책이다. 그녀는 서점을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닌 서로가 소통하고, 사람들이 찾아 헤매는 실마리를 찾아가는 공간으로 그리고 있다. 영주가 오픈한 서점은 독립형 개인 책방으로 책을 연결고리로 사람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소통과 쉼의 공간이다.
우리나라 성인 독서율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많이 떨어진다고 한다. 책이나 신문보다 스마트폰처럼 빠르게 갈무리된 지식의 단편을 얻는 요즘.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느림보 책 읽기가 과연 통할까? 동네의 작은 책방이 수지타산을 맞추어 사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이 서점이 2년 이상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책방지기 영주의 고민은 깊어간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변에는 카페가 부쩍 많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또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밥 먹고 숭늉 찾듯이 식사 후 커피 한 잔을 찾는다. 모닝커피가 하나의 루틴이 되었다. 커피나 차 한잔을 마실 수 있는 카페는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듯 현대인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장소가 되었다. 옛적 선조들도 빨래터에 모이거나, 동네 어귀에 마을 사람들이 어울릴 수 있는 정자를 만들어 담소를 나누곤 했다. 사랑채라는 공간에서 외부인을 맞아 세상 흘러가는 소식을 접하는 문화도 있었다. 영주는 이 점에서 힌트를 얻은 듯하다. 자신이 꿈꾸는 공간을 커피를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사랑방 같은 공간으로 재탄생시켜보면 어떨까 하는.
그녀의 공간은 커피 향과 함께 책방지기의 꼼꼼한 큐레이션, 독서 모임, 작가 초대 북토크 등의 이벤트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끈다. 사람들은 동네에 생긴 이 책방이 궁금하여 동네 복덕방 드나들 듯 와서 한숨 돌리고 멍하니 있다가 간다. 시대변화에 맞춰 사람들이 가진 공간에 대한 욕구를 재해석하려는 그녀의 의지가 절묘하게 맞아 들어간 셈이다.
이혼 후 서점으로 자립을 꿈꾸는 주인공 영주, 사회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커피 내리는 일에서 위안을 얻는 민준, 공부에 대한 열의를 갖지 못하는 고등학생 민철, 그런 자녀를 바라보며 답답해하는 민철 엄마, 비정규직과 계약직으로 일하며 직업 세계에 회의를 느끼는 정서, 프로그래머로서의 직업을 내려놓고 글을 쓰는 작가로 전향한 승우 등. 이들 모두는 서점이라는 공간을 교차점으로 세상에서 겪은 서로의 힘든 감정을 내보이고 쓰다듬어 주며 어루만져 준다. 그렇게 휴남동 서점은 책을 매개로 쉼을 얻고 서로 간의 소통이 가능케 도와주는 공간이 된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을 통해 물리적으로 항상 연결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외로운 섬처럼 존재한다. 사람들은 타인으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존재와 아픔을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을 품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을 읽으며 서로에 대한 격려와 관심을 얻는 공동체적 삶에 대한 토출구를 찾는 개인의 욕구를 읽을 수 있었다.
어떻게 사업체를 지속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에 어떻게 대응할지?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 일을 하며 일에만 함몰되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려면? 부당한 직장문화에서 돈을 벌고 자신의 앞가림을 잘해나가려면?
주인공 영주와 등장인물들의 고민을 들으며 이 서점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현재 동시대에 사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며 고민거리라는 점에서 공감이 되었다. 결국에는 보통 사람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모습일지,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고민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 섬세한 주인장 영주는 따스한 조명아래, 커피 향과 책향이 풍기는 곳에서 그들을 맞아주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어주고 공감해 주거나 같이 흥분하며 맞장구쳐주는 그런 사람들이 항상 있을 것 같은 공간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메마른 물질문명의 파고 속 외로움과 무기력, 피곤으로 지친 우리가 꿈꾸는 공간은 그런 사람 냄새나는 그런 공간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본다.
작가가 동네 이름을 휴남동 서점, 한자로 쉴 휴(休)로 한 것이 인상적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인생의 한 구간에서 한 템포 쉬어가며 자신을 돌아보는 각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작가는 쉼과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영혼이 도처에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듯하다. 그래서 그녀는 벅차하는 영혼들에게 쉬어갈 시간, 숨돌릴 시간, 천천히 여유있게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해 보라고 속삭이는 듯 하다. 천천히 가도 좋으니 자신만의 걸음걸이를 찾아보라고 따뜻하게 응원하는 듯 하다.
책을 좋아하는 작가가 글을 쓰면 이런 글을 쓰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책을 좋아하는 책덕후답게 작가 본인이 애정하는 책들을 이야기 중간중간 소개해 준다. 등장인물들에게 책을 소개해 준다든지, 독서모임을 이끄는 상황에서 도서로 선정한다든지, 서점에 큐레이션 되는 책 등 다양하게 여러 책을 보여주고 있다. 그 책들을 따로 적어놓고 읽어봐도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그녀 덕분에 알게 된, 책 속에 언급된 영국 그룹 Keane의 Hopes And Fears가 인생 음악이 되었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인상적인 문구>
서점이 없는 마을은 마을이 아니다.
스스로 마을이라 부를 수는 있겠지만 영혼까지 속일 수는 없다는 것을 자신도 알 것이다.
- 닐 게이먼(소설가)
- 몸이 그 공간을 긍정하는가? 그 공간에선 나 자신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그 공간에서 내가 나를 소외시키지 않는가. 그 공간에선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가.
- 소설 주인공은 다 조금이나마 어긋난 사람들이라서 결국 보통 사람들 대변한다고. 우린 다 어긋나 있어서 서로 부딪치다 보면 상처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거라고. 다 해를 끼치고 살지. 그러다 가끔 좋은 일도 하고.
-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사는 삶보단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사는 게 더 맞지 않을까.
- 숨통 트이는 시간. 하루에 10분이라도, 한 시간이라도. 아, 살아 있어서 이런 기분을 맛보는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시간
-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세상이 더 빨리 좋아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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