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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박경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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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퓰리처 수상작이다.

1961년에 수상했으니 출간된 지도 꽤 오래된 책이다.

나 역시 화려한 명성에 걸맞는 책을 한 번은 읽어야 할 듯하여 젊은 시절 읽었으나 그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 도서정리목록에서 제외되어 책장에 꽂혀 오랜 세월을 잘 버텨낸 게 다행인 책이었다.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라는 말이 있다. 이 표현에 걸맞게 나는 나이 들어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이 되었고, 그때가 되어 다시 읽어보니 이 책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정말 참 좋은 책이구나, 청소년 외에도 어른들도 읽어 보라고 마구마구 주위에 권하고 싶은 책이 되었다.

 

일단 미국이나 캐나다같은 다인종국가에서는 이 책의 비중이 크다. 그래서 이 책은 아이들 온책 읽기로 선정되어 학교에서 한 학기 내내 수업을 진행하며 약방에 감초 같은 교재역할을 한다. 인종 차별이란 주제는 이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큰 축이다. 인종차별주의(Racism)가 워낙에 사회의 주요 이슈이고 사건이다 보니 그럴 만도 하다.

여기에 사춘기 소년 소녀의 성장 이야기, 아이를 양육하는 나이든 부모의 철학과 지혜, 사회의 약자를 대하는 방식, 마을이라는 공동체를 지켜나가는 성숙한 어른들의 태도, 편견에 맞서서 정의의 편에 선다는 것, 인간의 잘못된 신념과 선입견에서 벗어나기의 어려움,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가 등 이 책에서는 생각해 볼 만한 여러 가지 소재거리들을 던져 준다.

From unsplash

 이 소설은 1930년 경제 대공황을 시대적 배경으로 앨라배마 주라는 미국 남부 중의 남부라는 보수적인 도시, 흑인 운동의 본거지와 같은 곳을 공간적 배경삼아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대공황으로 경제적으로도 힘든 상황에서 흑인과 백인의 공간적 분리, 즉 교회도 서로 다른 교회를 다니고, 드나드는 문도 다른 문으로 다녀야 하고, 심지어 묘지도 서로 다른 곳에, 버스도 흑인은 맨 뒤에 타야 하는 그런 흑인과 백인의 첨예한 차별이 존재하는 시대였던 것이다. 이 당시 미국에서는 흑인과 백인의 크고 작은 충돌들이 불거져 나왔다. 책은 1960년도 출판되었기에 이러한 갈등들이 이 책에 녹아져 나왔으리라 생각된다.

 

초반은 부 래들리라는 사회 부적응자를 집 밖으로 끌어내려는 철없는 아이들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나는 이야기의 선을 따라가며 이들을 둘러싼 극적인 전개를 기대했지만 이야기의 흐름은 백인 여성을 겁탈했다는 죄목으로 법정에 서게 되는 톰 로빈슨의 이야기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이 책은 어린 소녀의 눈으로 본 세상을 써나가는 성장소설이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며 아이들의 마음과 몸이 성장한다. 그 가운데 흑인을 변호하는 아버지를 둘러싼 대립과 충돌을 보면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마음속의 카스트 제도를 알아간다. 스카웃의 오빠는 이렇게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마을에는 네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자신과 이웃들로 이루어진 보통 사람들, 숲 저쪽에 사는 커닝햄 같은 사람들, 쓰레기 더미에 묻혀 사는 이웰 부류의 사람들, 그리고 흑인.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속에 은연중에 계급과 계층이 자리 잡아가는 것인가?

Unsplash 의 Scott Webb

일단 나는 이 책에서 나이들어 아이를 양육하는 주인공 아버지의 삶의 태도와 철학에 이끌렸다.
주인공(여자 아이)의 아버지는 오십에 가까운 나이에 두 남매를 양육하는 변호사로 등장한다. 그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자기 신념에 따라 흑인을 변호하며 생명의 위협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또한 집에 틀어박혀 살던 부 래들리를 밖으로 끌어내려는 철없는 아이들의 행동에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신이 아이들에게 사 준 공기총으로 양철깡통이나 새를 맞출 수 있지만 앵무새를 죽이는 것은 죄라고. 그리고 이어지는 머디 아주머니의 어르신다운 말. '너희 아빠 말씀이 옳다, 앵무새는 노래를 불러 우리를 즐겁게 해 줄 뿐, 곡식을 축내거나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만들지는 않아. 그저 온 힘을 다해 노래를 불러주지.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면 죄라고 하셨을 거야'

그리고 늦은 나이에 양육하는 아버지를 두고 아이들의 철없는 말에 머디 아주머니는 또다시 멋진 말을 해준다. '너희들은 행운일 줄 알아야 한다. 네 아버지 나이의 철학을 단단히 누리고 있으니까. 만약에 말이다, 네 아버지가 지금 삼십 대라면 너희들의 삶도 무척이나 달라져 있을 게다.' 

자신의 집이 불타서 잿더미가 되었음에도 자신은 그렇게 큰 집을 관리하기에 너무 나이가 많아 오히려 다행이라고 말해주는 초긍정 머디 아주머니. 주변이나 공동체에 이런 분 한 사람만 있어도 든든할 것 같다.

집안일을 도와주는 흑인 칼 퍼니아 아줌마도 자신의 본분에 맞게 사려 깊은 행동을 하는 여성으로 나온다. 흑인인 가정부로서 그녀는 자신이 이중 언어를 쓰는 이유가 자신이 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속하는 흑인의 공동체에서는 위화감을 낮추고 그들과 조화롭도록 그들의 언어로 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From unsplash

그렇다면 부 래들리는 소설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이 책의 제목에서 언급된 앵무새는 어떤 의미일까? 소설에서 앵무새는 큰 비중으로 나오지 않는데 말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부 래들리나 톰 로빈슨 같은 사회적 약자가 앵무새임을 눈치채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왜 앵무새를 주목해야 하는가? 우리 주변에도 사회에 무해한, 하지만 약한 앵무새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학생들 사이에 벌어지는 학교폭력, 집단 따돌림등은 작고 힘없는 아이들에게 향해있다. 그 수위가 높아지고 위험하기에 우리는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이야기 후반부에 가면 주인공 여자아이는 부 래들리의 집 앞 현관에 서게 된다. 그리고 생각한다. 언젠가 아버지는 말씀하셨지. 남의 입장에 서보지 않는 이상 결코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굳이 끄집어내어 그가 살아온 삶을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 교화시키려 하지 말라고. 그는 단지 그곳에 있고 싶을 뿐이었던 거라고.

작가는 아버지 애티커스의 톰 로빈슨을 향한 변론을 통해 만인 앞에 평등한 법을 주장했다. 법정에서 만큼은 공정하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할 법의 위엄성을 강조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우리에게도 만인에게 평등한 법의 엄중성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책의 내용은 주로 흑인과 백인의 갈등이 다뤄지고 있지만 이를 둘러싼 사리와 분별력을 갖춘 성숙한 어른들의 삶의 태도와 용기, 사회적 약자를 향한 배려와 너그러움을 알아가며 커가는 소년, 소녀를 보며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마을이 필요하다.'란 문구를 떠올려 보게된다. 작가는 여름과 가을, 겨울에 이르는 계절의 변화와 함께 부쩍 성장한 아이들을 보여주며 삼 년간의 성장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고 할 때, 영어에 put yourself in other's shoes란 표현이 있다. 소설 마지막 장에서 나온 영어 원문 표현을 옮겨 적어본다. 

'Atticus was right. One time he said you never really know a man until you stand in his shoes and walk around in them. Just standing on the Radley porch was enough.'

(아버지 말씀이 옳았다. 언젠가 아버지는 남의 입장에 서보지 않는 이상 결코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었다. 래들리 집 현관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건 충분했다.)

묵직한 울림이 가득한 글을 청소년 성장기 아이들과 읽고 얘기 나누면 좋을 책으로 추천해 본다. 

 

인상적인 문구:

"슬프냐고? 아니 그 오래된 암소 헛간은 정말 보기 싫었단다. 난  정말이지 백 번도 더 그 집에 불을 놓고 싶었지.'

-머디 아줌마

 

내가 아는 걸 모두 다 말할 필요는 없단다. 그건 첫째 교양 있는 일도 아니고, 둘째, 사람들이란 자기보다 더 많이 하는 사람이 주위에 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 법이거든. 더욱 화만 나게 할 뿐이지. 옳은 일을 지적해 줘도 전혀 바꾸려 하지 않는단다. 그들이 배우길 원하든 말든 그저 그들의 방식대로 따라가 주는 것이 최선이란다.  -칼퍼니아 아줌마

 

나는 네게 진짜 용기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총이나 들고 있는 남자들의 어쭙잖은 용기가 아닌 진짜 용기 말이다.

- 애티커스

 

우리는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창조되지 않았음을 압니다.  어떤 이는 더 영리하고, 또 어떤 사람은 태어난 환경 덕분에 더 많은 기회를 갖습니다. 어떤 이는 돈을 더 많이 벌기도 하고, 어떤 여성은 더 맛있는 케이크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표준 이상의 능력을 선물 받고 태어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 안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곳이 있습니다. 가난뱅이와 록펠러를, 백치와 아인슈타인을, 무식쟁이와 대학총장을 동등하게 하는 인류의 공공기관이 있는 것입니다. 신사 여러분, 그 기관은 바로 이 법정인 것입니다. -애티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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