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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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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독서모임에서 읽기로 한 책은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다. 넷플릭스에서 한번 봤던터라 내용은 대략 기억했지만 문제는 제목이었다. 제목이 생소했다. 그래서 책을 빌리려 도서 검색을 하려는데 이게 간지인지 건자인지, 긴자인지 나 혼자 생각해 내는데 곤혹을 겪었다. 그런데 '건지'가  여수 돌산도 정도 크기의 영국 해협에 있는, 영국 왕실 소유의 섬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책이름을 기억하였을 것이다. 책 뒷 표지를 보니 딱 하니 건지섬이 실제하는 게 아닌가.

또한 건지섬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군의 침공으로  점령을 당했었다. 이 소설은 외부와의 연락이 전혀 끊긴 채 5년의 세월을 견디며 독일군으로부터 먹을 것과 자유를 빼앗긴 건지섬 주민들이 힘든 시간을 겪어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하야 이 책을 읽었는데 내용은 주인공 줄리엣이 건지섬에 사는 도시 애덤스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와 편지를 주고 받다가 건지섬에 대해, 독일군 침공의 만행에 대해, 엘리자베스에 대해, 감자껍질 북클럽의 정체에 대해 궁금한 점을 알아가는 내용이다. 결국에는 이 독서 모임에 대해 글을 쓰려고 줄리엣이 섬을 방문하면서 내용은 더 다채로와진다. 어쩌다가 전쟁통에 독서 모임이 만들어졌는지,  독서모임 명칭에 음식이름이 들어가게 되었는지 흥미로움을 던져준다. 먹거리와 마실거리도 통제되는 그 곳에서 돼지고기는 금기된 음식이고 감자는 그나마 그들에게 허용된 일용할 양식이다. 탈취, 외부와의 차단, 통금 시간, 독일군, 발각, 체포, 취조, 총살 등 전쟁을 상징하는 단어와 문학회, 돼지고기구이, 책, 독서 등 서로 상반된 듯한 단어의 조합 속에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가 펼쳐진다.

From Unsplash

여기서 내용을 정리하면 이야기의 참 맛을 잃어버릴 테고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분명 이 책은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삶의 고통과 힘든 상황을 얘기하면서도 인물간 내용 전개는 경쾌하고 발랄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의 전쟁 이야기가 아니어서 공감력이 떨어져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전쟁의 참혹함을 얘기하면서도 독서클럽이라는 우발적 모임을 모티브로 이야기를 신선하고 흥미롭게 전개해 간다. 난 마치 빨간 머리 앤을 읽는 듯한 작가의 종알거림과 수다스러움을 발견했다. 그것이 아마 작가의 힘이지 않을까. 인간이 일으킨 전쟁이라는 어두운 그림자에서도 인간적인 삶의 모습을 그려내는 힘. 그 속에서 힘든 삶을 책을 매개로 헤쳐 나가는 희망적인 모습.

이야기의 큰 그림 속의 주인공은 줄리엣이지만,  건지섬 이야기 안의 또다른 주인공은 엘리자베스이다. 그녀는 마음이 따뜻하고 의협심이 강한 여성으로 독일군 의무관인 크리스티안 헬만과 눈이 맞아 아기 킷을 낳고 그 후 도망치는 포로를 돕다 결국 독일의 포로 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 그녀의 생사여부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돌아가며 킷을 돌보게 된다. 엘리자베스의 무사귀환을 꿈꾸지만 결국 그녀는 다른 포로에 대한 불의를 참지 못해 저항하다 포로수용소에 총살을 당하게 된다. 

 책 모임을 통해 책이란 것을 평생에 한번도 읽어보지 못할 사람들이 변하게 되고, 서로를 돌보게 되는 이야기다. 주인공인 줄리엣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자신은 어떤 삶을 꾸려가야 행복할지 독서모임을 통해 알아가게 된다. 줄리엣이 최종적으로 선택한 사랑하는 사람이 의외였지만 책은 책이므로 작가의 맘이라는 거. 그리고 독일이 아름다운 섬을 짓밟아 사람들의 삶이 황폐화 되었지만 남아있는 자들이 독일인과 영국인의 사랑의 결정체인 킷을 사랑으로 돌봄으로써 미움을 사랑으로 완성해가는 모습에서 작가가 보여주는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음미해 보게 된다.

나와 상관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책을 통해 위로를 받고 서로의 삶을 돌아보며 변화돼 가는 것. 그것이 독서모임의 묘미가 아닐까싶다. 모두다 다른 생각을 품고 살지만 책의 글귀에서 발견하는 영혼의 흔듦. 영혼을 만져주는 것은 책과 글의 힘이리라. 줄리엣이 건지섬을 방문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분주함과 기대가 즐겁게 묘사되어 있다. 나도 언제 이렇게 누군가의 기다림의 대상이 되어 사람들을 즐겁게 한 적이 있던가. 정말 부러운 장면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작가의 유쾌한 시선에 재미있기도 했지만 편지를 주고 받는 형식으로 글을 전개해 나가다보니 처음에는 갑자기 등장하는 인물들로 당혹스럽기도 했다. 나중에는 등장인물을 적어가며 읽어가야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파악할 수 있고 헷갈리지 않을 정도였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등장인물이 20명 이상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것이 작가의 플롯의 힘이겠지만. 등장인물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통에 글의 흐름을 놓칠 수 있다는 말씀. 작가의 상상력이란 참으로 대단하단 느낌을 받으며 읽은 책이었다. 전쟁의 상황을 알리면서도, 그 섬의 존재를 알리고, 그 시기를 지혜롭게 버텨낸 삶의 현장을  재구성하고 캐릭터에 상상의 옷을 입히는 작가의 재능. 이게 글의 힘이고 작가의 역량인가보다. 

From unsplash

영화도 넷플릭스에 나오니 한 번 보면 좋겠다. 영화라서 그런지 확실히 임팩트와 생동감이 단연 돋보인다. 스토리 전개도 이해하기 쉽고. 허나 꼭 책을 읽은 뒤 읽어보시길. 영화는 책의 내용과 사뭇 다른 내용이 많고 이야기의 결도 다르다. 줄리엣을 고대하는 설레임의 장면이 없고 줄리엣의 갑작스런 방문에 경계심을 품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아쉬울 정도다. 러브 라인도 그렇고 각색이 너무 많이 되어 있어 같은 제목의 다른 느낌의 영화이다. 

책을 읽기 위해 모인 모임이 순수하게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면 이 책은 즐거운 책이 되어 줄 것이다. 건지 섬은 실제로 1945년도 5월에 독일군에게 해방되었고 우리도 1945년 8월에 일본군에게 해방되었다. 그 시기에 말을 잃지 않고, 글을 잃지 않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힘든 시기를 이겨냈을 동시대의 모습이 이 책과 오버랩되어  마음이 끌린다. 우리 나라에서도 그 당시 어디서인가 책을 같이 읽으며 서로의 영혼을 보듬으며 힘든 시기를 견뎌낸 모임이 있었을지 누가 알겠는가? '동막골 감자전책모임'이나 '오동도 해물파전책모임' 같은 게 실재했을지도.

인상적인 문구

'그래서 제가 독서를 좋아하는 거예요. 책 속의 작은 것 하나가 관심을 끌고, 그 작은 것이 다른 책으로 이어지고 거기서 발견한 또하나의 단편으로 다시 새로운 책을 찾는 거죠. 실로 기하급수적인 진행이랄까요. 여기엔 가시적인 한계도 없고 순수한 즐거움 외에는 다른 목적도 없어요.'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 애니 배로스

P.S.

우연히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 김원희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려다 펼쳐 본 페이지에서 이 책을 몇 번이나 읽고 실제 건지섬을 방문한 70대 할머니의 이야기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그 책도 빌려왔는데 그래 누가 알겠는가? 건지 감자껍질파이 책을 읽고 언젠가 나도(당신도) 그 할머니처럼 그 섬을 방문해 그 섬의 정취를 느끼며,  예전에 읽었던 책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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