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그림은 참 재미있다'로 작가는 운을 뗀다.
그림.
그림은 나에게는 난해하면서도 흥미로운 그 무엇이다. 그림을 그릴라치면 소질이 없는 나에게는 어렵고도 재미없는 활동이지만, 감상의 차원이라면 무언가 끄는 매력이 있는 분야이다. 그러기에 미술에 조예가 없어도 감상하는데는 문제가 없다. 그림은 무언가 이해 할 수 없는 오묘함이 더 매력적이다. 그래서 나는 미술을 일도 모르면서 유럽에 가면 미술관 순례를 하였다. 파리에선 루브르 박물관 대신 퐁피두 센터를, 영국에선 에딘버러의 자연 대신 런던 다운타운 내의 작은 갤러리들을 찾아다녔다. 네델란드는 미술에 관한 한 또 대단한 화가 보유국이다. 반고흐를 필두로 램브란트, 피터 브뤼겔, 몬드리안, 요하네스 페르메이유 등의 유명한 미술가의 그림으로 눈호강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나라이다. 학창시절 나는 특히 데생을 못 그렸다. 배운 적도 없는 데생을 성적을 받기 위해 그려야 하니, 스케치를 곧잘 하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었다. 그럼에도 성인이 되어서는 미술관 순례를 다니는 이 아이러니란.
그래서 이 책, 그림을 소개하는 이 책에 손이 갔다. 더욱이 이 책은 그림과 마음을 챙겨준다. 동양 종교인 불교의 '마음챙김' 단어보다 서양의 명상과 요가에서 mindfulness로 더 많이 접한 것도 또 하나의 아이러니다.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은 그림을 보는 걸 어려워한다.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재미가 없다고. 나도 그렇긴하다. 하지만 그 누군가 그랬다. 그림을 꼭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그냥 느끼면 되고. 때로는 그림이 당신에게 말을 걸어 올 것이라고. 여러 작품을 보다가 문득 그 작품 앞에서 유독 오랜 시간 머뭇거리게 될 때가 있다. 그리고 내 마음과 시선을 당기는 그림. 그 때가 그림이 당신에게 말을 걸어 오는 때이다. 그런 작품이 나에게는 '램브란트'의 예수 탄생을 그린 작품이었고,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우유를 따르는 여인이었다. 유화의 짙은 터치와 색감이 기름진 음식을 먹은 듯 질리고 느끼해질 즈음 램브란트의 예수 탄생을 그린 램브란트 작품은 화려하지 않게 소박하면서 편안하게 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어둠 속에서 예수 주위로 빛이 어린 모습이 묘하게 시선을 끄는 것이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는 '진주 목걸이를 한 여인'이란 작품으로 유명한 화가다. 하지만 나는 '우유를 따르는 여인'의 굵은 팔뚝에서 주부로서의 묘한 동질감이 있어서 그랬을까 반복적인 일상의 고단함이 읽혀지며 이 작가가 누구인지 궁금해지며 그의 다른 작품도 알아보게 되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명화들을 접하다보니 그냥 느낌으로도 충분한 작품도 있었지만, 화가의 배경과 심리를 알고 접하는 작품은 그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깊어짐을 느꼈다. 여기에 소개되는 화가들은 대부분 아픔과 좌절을 겪어낸 인물들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인지 단순히 내 맘에 든다는 가벼운 접근보다 화가들이 그림을 통해 숨겨놓은 심리와 코드를 디코딩하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발레하는 모습을 그린 '에드가 드가'가 특별한 사연으로 여성혐오자였다는 것은 놀라운 내용이었다. 발레하는 여성과 발레 슈즈 등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심취하였다가 내막을 알고 이 작품을 접한다면 뜨악하는 놀라움에 이 작품을 결코 집안에 걸어둘 용기를 내지는 못 할 것이다.
화가들의 특이한 이력을 보는 것도 재미있는 요소이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를 모시던 하녀와의 삶을 선택하면서 집에서 쫒겨나 작품활동을 했던 카미유 피사로.
증권맨에서 전업화가가 되면서 경제적 문제와 평론가들의 혹평으로 좌절의 시기를 겪었던 폴고갱.
나치당을 두고 정치적 신념과 사회적 흐름 간 충돌을 보며 자신의 길을 고민했던 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
남성의 몸으로 여성이 된 덴마크의 첫 성소수자 화가 릴리 엘베.
가난해서 물감을 사기도 부담스러워했지만 행복을 그렸던 오귀스트 르누아르.
신화나 역사화를 그리는 고전적 화풍을 벗어나 주체성을 찾고자 했던 화가, 살롱 옆에 낙선작들을 모아 전시한 <낙선전>에 걸려야 했던 <풀밭위의 점심식사>, <올랭피아>등을 그린 에두아르 마네.
시시각각 변해가는 빛에 따른 변화를 화폭에 담아내고자 했던, 클로드 모네.
어머니가 바람을 피우면서 가정 파탄을 겪으며 여성 혐오주의자가 된, 에드가 드가.
말에서 떨어져 성장이 멈춘 장애를 가졌지만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툴루즈 로트랙.
은행주, 아버지의 기대감에 미치지 못했던 아들로서, 살아생전 아버지와 대중의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사과로 세상의 평정을 꿈꿨던, 폴 세잔.
가족의 연이은 죽음으로 불안감과 공포에 시달렸지만 결국 희망의 메시지를 찾아낸, 에드바르크 뭉크.
스승에게 성폭행을 당해 평생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았던 여성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스승 로댕과의 사랑과 이별로 자기 파괴적인 삶을 살았던 불운의 여성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
왜소한 몸과 다리에 장애를 가졌지만 자신만의 시선으로 아름다움을 포착하여 그려낸 캐나다 여성 화가, 모드 루이스.
내가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작가지만, 우울증과 자기만의 편향된 아집으로 고통받았던 자기 파괴적인 화가, 고흐.
부서진 몸과 마음으로 시련 속에서 그림을 그려야 했던, 프리다 칼로.
여기에 소개된 작가들은 몇몇을 제외하면 어쩌면 한결같이 인생에서 왜 나에게만 이런 상황이 주어졌는지 신을 저주하고 한탄했을 법한 사람들이다. 신이 주신 놀라운 재능에도 자신을 파괴해버린 고흐나 까미유 같은 안타까운 화가가 있었는가하면 상처와 불안을 드러내 치유를 이끌어내고자 했던 뭉크같은 화가도 있었다. 힘겨운 화가들의 삶에 비추어 그들은 어떻게 삶을 꾸려 나갔는지 볼 수 있다. 만약에 내가 나의 삶과 상황을 비관하고 힘든 무언가에 매몰되어 있다면 이 책은 참으로 귀한 말을 속삭여 줄 것이다. 힘든 상황을 자기 승화로 이끌어 갈 것인지, 자기 연민과 파괴로 이끌어 갈 것인지. 이 모두가 자신의 선택이라고. 그리고 그들의 무의식적인 투쟁과 방향성이 결국은 어디로 이끌었는지를 보면서 우리의 행보도 예상해 볼 수 있게 한다. 여기서 멈출 것인지 전진할 것인지, 퇴행을 선택할 것인지.
작가 분이 참으로 마음과 심리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미술과 마음을 연결하여 소개해 주는 글귀에 쫑긋 귀가 세워진다. 화가들은 어떻게 슬픔과 고통을 관통했는지 그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고 가슴아프게 들려온다. 하여 그 모습을 자신에게 투영하며 자신의 현 마음 상태를 돌아보게 한다. 인간의 나약함, 악랄함, 교활함, 무지함, 증오심,불안함, 분노심, 공포심, 상실감 그리고 그 반대편의 감정인 희망, 상승, 승화, 극복, 수용, 탈피, 믿음, 성장이란 단어를 화가들의 삶과 작품에서 뽑아 낼 수 있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작가의 삶이 고단하여 완성도 높은 작품이 나온 것인지, 예술을 선택한 이유로 그런 혹독한 댓가를 치러야 했던 것인지. 여튼 그들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화가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과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함을 가장 힘들어 했던 것 같다. 나는, 우리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무엇때문에 괴로워 하는가? 작가는 그림과 화가의 삶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어떤 삶을 살면 좋을지 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그림도 챙겨주고 마음도 챙겨주는 이 책이 참 귀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은 다양한 화가들의 화려한(?) 이력과 고충이 소개되어 있으면서 4장으로 구성된 나의 마음 돌보기는 정말 너무너무 소중하다. 미술치료를 전공한 작가분의 마음치유력과 그에 못지 않은 작가의 필력이 이 책을 더욱 좋아하게 만든다. 목차를 펼쳐보고 마음치료 항목을 보시고 자신에게 해당되는 내용이 있다면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재미있는 상상이지만 이 책에 소개된 작품 중 집에 걸어두고 싶은 그림을 고르라면, 카미유 피사로의 <퐁투아즈의 봄>, 폴 세잔의 정물화, 모드 루이스의 작품이면 좋을 듯 하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이스라엘의 여자 영웅 '유디트'를 그린 작가들이 많았다는 점과 알렉상드르 슈타이렌의 <검은 고양이 여행>란 포스터 작품과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디트>는 만화영화 '레이디버그(MIRACULOUS)'에서 숨은 그림처럼 찾아보며 그 모티브를 찾아볼 수 있다는 게 참 흥미롭다. 그림이란 영역도 역시 아는만큼 보인다는 게 맞는가보다.
인상적인 문구: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니까
이제는 원래의 내 모습을 찾아보자. (중략) 가면을 벗고 편안하게 본래의 나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아주 짧더라도 분명 있을 것이다. 샤워를 하는 시간, 잠이 들기 전의 시간, 하늘이나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 등. 이 시간들이 주어질 때 잠시 가면을 벗고 온전히 나로 있어보자. 늘 갑옷을 두르고 있거나 전쟁을 나갈 준비를 할 필요는 없다.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들을 그대로 두자, 우리는 이것을 '쉼'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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