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황당한 제목이냐?
나이는 벌써 오십 넘은지 언제인데...
오십이 넘어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살 부빌 수
없는 타지에 나오니 이제서야 어른이 되어
간다는 느낌이다. 아니 아직도 완전한 독립은 이루지는 못했다. 부모는 아직도 자식을 그리워하고 자녀가 성인이 되었음에도 이제나 저제나 걱정이시다. 한국적인 정서로는 자녀의 완전한 독립은 요원한 일이다.
한국에서는 필요치 않은 일들을 해외에 살다
보니 하나하나 새롭게 알아가고, 혼자서 처리
해야 하고...
돈으로 처리하면 쉽겠지만 내가 하지 않으면
언제나 내 것이 되지 않는다. 몸으로 부딪혀서
알아가고 체화시켜야 비로소 나의 것이 되는 것이다.
주말에는 세금 신고를 위해서 ITN 넘버를 받
기 위해 은행으로, 우체국으로 돌아다녔다.
캐나다에서의 연말 정산 시즌이 돌아왔기에
나름 찾아보고 알아보고 공부하는 중.
오늘은 팜보이에서 사온 배추로 김치를
담았다. 고향에 갈 때마다 담아 주시는 김치를
가져와 먹다가 손수 절이고 양념 만들어 할려
니 김치 한번씩 담으려면 하루 내내 종종
거린다.
양가 부모님이 챙겨 주신 음식을 내려 갈 때
마다 바리바리 싸들고 오던 시기를 벗어나
이제야 혼자서 유튜브 보면서 이 음식 저 음식
만들어본다. 그래봐야 흉내내는 것이지만
혼자서 무언가를 해내야 크는 것이다.
자식이 부모를 떠나 자주 뵙지 못하면 불효가 되지만 그러더라도 독립을 시키려면 떠나
보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라는
개념으로 출가를 시키고도 온전한 독립의
개념이 들어서지 못한다. 그래서 결혼하면
양가와 새로운 가정의 불편한 동거를 시작하
는 것이다.
서양에도 불효라는 개념이 있을까? 한국에서
는 반쪽짜리 독립밖에 할 수 없다. 불효라는
프레임 안에서는 독립의 프레임을 양립시킬
수 없다.
오십이 되어서도 정신적, 경제적 독립이 되지 못하는 관계. 부모는 출가 후에도 자식을 걱정
하고 자녀는 부모를 부양해야 하고.
캐나다에서는 독립의 개념이 뚜렷한 것 같다. 자식이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시스템도 아닌
것 같다.
이 뭔가 보이지 않은 테두리에서 나는 이제야 독립을 위한 걸음마를 떼고 있다. 오십이 넘은
이제서야 혼자서 걸음을 떼고 있다. 김치를 담
그며, 세금 신고를 하며, 재정 설계를 하며,
은퇴 후 삶을 설계하며.
독수리의 새끼 양육법을 생각하며 나는 이제
야 혼자서 날개를 펴고 나는 연습을 조금씩
하고 있는 것이다.
두려움에 맞서서 홀로 서는 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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