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대학 순위, 가장 연봉이 높은 직장 순위, 이 도시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순위...한국만큼 순위, 서열에 민감한 나라도 드물다, 비교와 서열 매기기는 한국 학생들에게 내가 어디쯤 속하는지에 대한 일상적인 지표다.
많은 수의 젊은이들이 이 나라를 떠나고 싶어하고, 탄생을 알리는 아이들의 우렁찬 울음 소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분명 우리 사회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걸 증명하는 사실들이다. 이것은 마치 달콤한 미소에 감춰진 균열, 완벽한 웃음 속에 비친 얼룩 같다. 놀랍도록 전세계에 떠오른 대한민국의 위상과 이미지는 어찌된 일인지 성형된 듯하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지 알아야 한다.
한국인들의 이상한 행복/ 안톤 슐츠
그렇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끝임없이 사람들을 줄세워 비교하고 나는 어디쯤에 속하는지 확인하는 무의식적인 행동을 한다. 서열매기기가 일상적인 지표라니. 왜 그렇게 된 것일까? 언제부터 이런 일이 생겨난 걸까?
푸른 눈의 외국인이 한국인들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보여주기식으로 화려한 한국인들의 외면 뒤에 내면은 공허함과 절망감으로 힘들어하고 사람들은 외로움을 앓고 있다고. 외면과 내면의 불균형을 이야기한다. 대한민국의 발전된 이미지가 성형된 느낌이라고까지 극단적으로 얘기한다. 또한 상대적으로 많은 재산, 더 좋은 직업, 더 비싼 아파트에 대한 끊임없는 만트라를 넘어선 인생의 행복은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우리도 감히 꺼내놓고 얘기하기 두려워 감춰둔 이야기들은 데이터가 되어 우리에게 그 수치를 보여 주지만 우리는 어디서부터 문제인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냥 큰 흐름에 밀려 떠내려 가는 느낌이다.
너무도 흥미롭게 읽은 책이었다. 숨기고 싶은 치부를 다 아는 친구가 나에게 충고하는 느낌을 받았기에 나는 이 외국인의 쓴소리가 반갑고 고마웠다. 그는 공정한 사바나와 마냥사냥같은 도덕성 검증문화, 삭제 문화 등 우리가 우리 안에 있기에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까지 건드려 준다. 교육문제, 천편일률적인 성공 방정식, 저출산, 자살 등 우리가 문제로서 알고있지만 해결하지 못하고, 뫼비우스 띠같이 반복하며 돌고 도는 문제에 대해서도 자신의 철학으로 설명한다. 이것은 한국에 살고 있지만 한발짝 떨어져 살고 있는 이방인이기에 가능한 성찰이 아닐까 싶은 부분이다.
또한 슐츠가 던져준 질문이 고마운 것은 내안에, 우리안에 감춰진, 노마드의 모험적 유전자를 일깨워주어서이다. 나를 보면 무언가에 몰두하면 그 문제에 침착되어 그 상황에서 벗어나 환기하는 작업, 즉 한 발 떨어져 문제 바라보기, 노마드로서의 나의 위치 인식하기 같은 일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 나는 우주 어느 공간에서 이 지구에 던져진 존재였었지. 그렇다면 지구에서 사는 동안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까, 주변에 얼마큼의 사랑을 나눠주고 가야 할까? 어떤 추억을 간직한 채 지구를 떠나고 싶은가? 갑자기 나의 관점이 줌아웃된다. 차원이 다른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요즘은 대한민국에서 코로나 이후로 의대쏠림 현상을 보면서 사람들이 지향하는 천편일률적인 방향성에 놀라게 된다. 삶의 가치가 비슷하거나, 같거나. 그렇다고 하여도 그렇게 성공방정식이 같은 결과를 만들어내다니. 우리나라의 특이성에 기인한 것 같다. 그렇다고 의대에 가려는 친구들이 봉사정신이 뛰어나서 그런 것은 아닐테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 기여와 봉사정신에 대해 그다지 가중치를 두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슐츠가 추구하는 행복을 들어보니 부럽기까지 한다. 불교에 기반한 삶의 철학과 마당이 있는 삶, 노마드를 일깨우는 여행, 위장을 통해 오는 사랑인 음식,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공간인 집, 동심의 세계를 지켜주려는 모습 등. 아니, 나는 이렇게 살 수 없는거야? 언제까지 사회의 기준에 맞춰 나의 행복을 유보해야 하는거지? 무엇을 위해 아이들에게도 행복을 유보하는 삶을 살게 할 것인가? 생각이 복잡해진다.
스라벨(Study & Balance), 한국의 어른들이 워라벨은 얘기해도 지켜주지 못하는게 아이들의 스라벨이다. 작가는 대한민국에서 아이다움을 흩뿌리고 다니는 세상이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이들은 금방 큰다. 동심의 세계에 머무는 시기는 길지 않다. 나는 얼마나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기다려 주었을까? 프뢰벨 동화 중 '북극으로 가는 기차'를 보면 아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썰매의 은방울을 받길 원하는 장면이 나온다. 결국 주인공, 소년은 선물로 받은 은방울 소리를 듣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동생도, 엄마,아빠도 그 은방울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어느 순간 순수했던 동심의 세계는 사라져 버린다. 아이들을 어렸을 때부터 영어유치원에 보내려하고, 이른 나이에 한글을 떼게 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아이들을 동심에서 머무리지 못하게 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요즘 드는 생각이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글자와 숫자 세계의 빠른 입문이 아이들에게 과연 좋은 것일까, 왜 그때는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왜 안달했을까 반성해본다.
깨어있는 어떤 학생이 어른들에게 이렇게 외치는 상상을 해본다.
'어른들은 하루 8시간 노동을 위해 투쟁한다. 그런데 고등학생들은 아침 8시 40분부터 5시경까지 학교에 있고 그후론 야간자율학습을 10시까지 하거나, 학원에 10시까지 있다가 학원숙제를 하느라 새벽1,2시에 잠을 청한다. 그 누구도 우리 학생들의 스라벨을 걱정하지 않는다. 중요한 수면은 중요하지 않다. 아이들의 건강도 이 시기에는 무쇠 체력으로 다 감당할 수 있다고 하신다. 많은 시간대비 어른들의 업무 효율성과 생산성이 떨어짐을 아시지만, 아이들의 엄청나게 많은 공부시간의 효율성은 논외다. 공부는 엉덩이로 하는 거라고까지 한다. 우리들은 100세이상을 살아가고, 2,3가지의 직업을 해나가야 하는 세상에 살아가야 할텐데 말이다. 어른들은 양치기(?)라고 하며 무시무시하게 많은 문제들을 풀고, 풀고,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아이들을 키우며 힘든 부분이 교육이다. 성장을 위한 배움은 즐겁지만 성공을 위한 경쟁적 교육은 괴롭다. 교육은 삶의 전반적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을 무의식적으로 통제하고 사회를 인식하게 하는 규범같은 거라 한번 길들여지면 스며들게 마련이다. 평생동안 삶의 방식과 사고 전반에 걸쳐서..그래서 환경이 중요한 것인데 대한민국의 교육 현장은 어른들의 탐욕과 돈이 얼킨 사업 현장이라 순수하지 않다. 불안감을 조성하는 진흙탕에서 아이들을 키운다는 건 쉽지 않다. 우리 아이들이 어른들이 펼쳐놓은 사교육과 난해하게 던져준 시험이란 굴레에서 현명하고 지혜롭게 빠져 나오게 할 수 있을까? 교육부분에서는 생각이 많다. 하지만 나름의 길을 갈 용기도 부족하다.
나는 어떤 행복관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인가?
대한민국의 성공 방정식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나만의 고유한 행복 방정식을 만들어 낼 것인가?
생각해보게한다. 고민하는 인생의 방향과 살아가는 인생의 방향이 다른 채 살고 있는 느낌이다.
어떤 행복방정식을 품고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 그 누구라도 자신의 행복관과 부모로서의 아이들의 교육관 등을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한 줄이라도 쓰게 하는 책이다. 어떤 부분은 작가 개인의 편향적 견해가 있어서 받아들여지지 않기도 했지만 그냥 좋은 충고쯤으로 받아들이겠다. 내 인생 챕터에 어떤 서사를 집어넣어서 풍부하게 하고 싶은지,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으로 살 것인지 질문을 던져 준 것 만으로도 충분하고 감사하다.
인생을 두 번 살 수 없다. 후회가 덜하도록 나름의 기준과 철학을 세워야겠다. 상대방의 작은 실수에도 칼같이 공정한 잣대로 매정하게 대하지 않았나도 돌아본다. 그리고 내가 머문 공동체가 서로 보듬어 줄 수 있는 그런 따뜻한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구성원들이 자신의 방식대로 행복해 하면 좋겠고 그걸 존중하는 사회였으면 하는 것도.
인상적인 문구:
모험적인 인생을 살 수 없더라도, 낯선 곳에서 떠오르는 보름달을 최소한 스무 번은 볼 수 있는 여행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나 역시 내 인생의 페이지 곳곳에 여행 챕터를 넣어 다채롭고 흥미로운 서사를 만들어 왔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어느 별에서 온, 아니면 우주의 어느 공간에서 온 나그네라는 걸. 이걸 상기하면 집착하려던 모습에서 한 걸음 물러나 인간 본연의 모습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 유전자 안에 흐르는 노마드의 본능. 안정적인 모습만을 추구하다 문득 우리는 어느 별에서 온, 잠시 이 곳을 거쳐가는 나그네라는 걸 깨닫는 순간, 삶을 보는 시각과 관점이 달라짐을 느낄 수 있다. By 안톤 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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