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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하며

내가 캐나다에서 본 것, 그건 바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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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와서 나는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가늠할 수 없이 너른 자연과 넓게 펼쳐진 땅.
그리고 나의 눈에 먼저 띈 것은 공간이다.
이들이 사는 공간.
이들은 우리와 사뭇 다른 공간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의 집의 형태는 타운하우스와 콘도, 그리고 아파트와 단독 주택의 구성으로 주거공간을 가지고 있다.
토론토나 벤쿠버같은 대도시에서는 콘도와 아파트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단독 주택이 주를 이루고 그 사이사이에 다른 형태의 주거단지가 들어서 있다.
이중에서 캐나다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거 형태는 단연 단독 주택이다.
나또한 단독 주택의 외관에 끌리지만 그중에서 가장 나의 마음을 끄는 것은 넓직한 앞뜰과 내밀한 공간인 뒤뜰이다.
앞뜰에는 넓은 잔디밭과 아기자기한 꽃밭과 아름드리 나무가 몇 그루 그늘을 드리우고 있으며 뒤뜰에는 울타리가 쳐져 있어
안을 들여다 볼 수 없게 되어 있다.


원래 사람들의 들여다보기 좋아하는 습성상
그들의 뒤뜰이 더 궁금해진다.
얼핏 보기에 뒤뜰에는 작은 수영장이나 바베큐 그릴이나 야외 식탁을 설치하고 나름 여유를 즐기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듯 하다.



나에게 만약 이런 공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이 공간을 무엇으로 어떻게 채워 넣었을까?
즐거운 상상을 하자면 나는 빨래줄을 걸쳐 놓고
쨍쨍한 햇빛에 빨래를 고실고실하게 말리고 싶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주변에 떨어진 낙엽을 긁어 모아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며를 생각하며 낙엽타는 향을 맡아보고 싶다. 으슬으슬해지는
겨울에는 작은 화로에 장작을 태우고 불멍을 때리고 싶기도 하다.
한국사람이라면 분명 귀퉁이에 작은 텃밭도 만들어 상추며 고추도 각종 채소들을 심을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하는 것 만으로도 행복하다.
얼마든지 하고 싶은 것을 써내려 갈 수 있을 것 같
다. 그런데 나는 한번도 이런 공간에서 살아보고자 하는 꿈을 꿔본적이 없다.
아니 그것보다도 그런 집을 지을 엄두가 나지 않는게 맞을 거 같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는데
단독 주택을 짓고 한가로이, 유유자적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싶은 거다.
하지만 그런 나만의 공간에 대한 갈망은 있다.
다른 사람들도 아파트가 편리한 점이 있지만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을 동경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공간에 대해 생각해보면 우리는 너무 사적인 공간이 없이 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예전에 지어진 아파트는 앞집에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고성부터 말다툼, 재치기 소리까지 다 들린다. 민망하기 이를데 없는 사적인 공간부족.
맘대로 노래를 부를 수도 없고, 악기를 연주할 수도 없고 걷는 것조차 신경쓰이지 않을 수 없다.
층간소음으로 아래층을 신경써야 되는 신경곤두서는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 수시로 아이들을 조용히 시켜야되고 큰 소리 나지않게 주의를 기울여야 되는 상황이다.
온전히 휴식을 취하고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일도
우리는 편안한 집이란 공간에서조차 제약을 받는다. 우리는 어쩌면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과잉자극 상태로 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나는 넓직한 앞뜰과 뒤뜰을 가진 이들의 삶의 모습이 부럽다.
내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어 보면 우리도 마당과 울타리가 쳐진 공간을 소유하고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 알록달록 채송화가 한가득 심겨져있고 다알리아, 사루비야, 분꽃, 봉숭아가 피어 있던
모습이 내 유년 시절 기억을 차지하고 있다. 울타리는 코끝을 알싸하게 해주는 노오란 열매와 가시가 달린 탱자나무가 심겨져 있었다.
우리는 편하고 관리하기 좋은 아파트에 살면서 나름의 해소 공간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있는
작은 베란다마저 우리는 베란다 확장 공사로 식물을 키울 수 있는 공간마저 빼앗겼다.
피곤한 현대인에겐 카타르시스 공간, 감정의 배설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감정을 쏟아내는가?
속에 내재된 불필요한, 넘치는 과잉 감정상태를 덜어내는 공간이 우리에겐 없다. 풀어내는 공간, 해소하는 공간 그리고 충전하는 사적인 공간.
그래서 우리는 많은 방을 만들어 냈다.
만화방, 노래방, 찜질방, 피씨방 그리고 실내 놀이터까지 대한민국엔 그렇게도 많은 방들이 존재한다.
집에서 할 수 있는 공간이 허락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배설할 공간을 외부에서 찾아다닐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공간이 사람의 생각 구조를 지배한다는 생각에 공감한다. 우리는 비슷비슷한 공간에 살고 있다.
남과 다른 생각, 스타일은 눈에 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무난한 삶을 지향한다.
비슷한 구조에 근거리에 살고 있기에 너와 나를 비교하게 되고 의식하게 된다. 다르게 독톡하게 나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것, 창의적인 생각으로 나답게 사는게 쉽지 않다.
무언가 유행하면, 누군가 그걸 소유하고 있으면 나도 그처럼 갖고 싶고, 그를 따라하는 심리 또한
유사한 공간에 사는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자화상이
아닐까?
그러면 해결책은 없을까?
나의 감정을 배설하고 획일화된 스타일 따라잡기에서 벗어나려고 다들 뿔뿔히 흩어져 전원주택을 짓고 살 수도 없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부동산과 공간은 그저 소유와 투자 가치에 머무르는 한 우리의 행복은 저 멀리에 있다고 한다면 자본의 논리에 문외한이라는 말을 들을게 뻔하다.
나는 공간이나 심리에 대한 전문가도 아니지만 소소한 해결책이라면 자연을 자주 마주 대하고 벗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자연은 언제나 다른 모습으로 나에게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기에 정형화된 모습이 아닌
나의 시선을 고정된 각도로 보여주는 공간을 벗어나 다각도로 다채롭게 보여주는 자연으로
자주 나가보는게 좋을 거 같다.
가장 좋은 건 이들처럼 가까이에 자연을 들이고 사는 거겠지만 말이다.
우리에게도 거친 심성을 내뱉고 보듬고 가꾸어갈 슈필라움의 공간을 가져보길 꿈꾸어본다.
하지만 쉽지 않음을 안다. 우리는 아파트라는 편리함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기에...

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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